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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열사

 

19915월이 19915월로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면

19915월은 19915월에 시작된 것은 아니리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45815, 해방과 함께 그어진 38선을 넘어서

1894년 우금치마루에 나부끼던 농민군의 깃발까지 뒤로 해야 하겠지만

김영균 열사, 그가 살았던 스무 해 세월만을 되짚기로 하자.

 

 

 

 

197210월 계엄령과 함께 선포된 유신헌법.

박정희의 권력시녀들을 모아놓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국회의원 삼분의 일과 대통령까지 선출하고

대통령 중임제한까지 없애버려 죽을 때까지 권좌를 보장한

종신대통령을 탄생시킨 사상초유의 헌정유린.

그것이 바로 조국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새 헌법이라는 유신헌법.

나라의 안위를 지킨다며 보국안민을 외치는 동학농민을 학살하고

조국 근대화를 위한다며 제국주의 외세에 나라를 갖다 바친

선배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았으니

막걸리 한 잔에 풀어놓은 이야기에도 반공법을 씌우고

입술 한 번 달싹여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아 가두는 건 기본이었겠지.

그 시절 초등학교 저학년 꼬맹이들이

구구단보다 먼저 외운 건 국민교육헌장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우리들은

토시 하나 틀려도 후려치는 회초리에 눈물 흘리며

 

반공정신에 투철한 삶의 길을 강요받았다.

 

초등시절소풍 김영균열사.png국민교육헌장.png긴급조치발동일지.png

 

 

197910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들려온 총성으로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으나 10.26의 총성은

권력자들의 암투 속에 터진 그들끼리의 파열음.

민주화의 서막을 열어젖히는 축포는 아니었다.

10.26의 총성이 가라앉을 새도 없이 터져 나온

12.12 군사반란의 총소리, 시대를 거스르는 반역의 소리.

나라를 지키라고 국민들이 내어준 총으로

민주주의를 살육한 전두환·노태우.

그들은 권력에 눈이 먼 민주주의의 학살자.

민주주의의 봄은 권력자들끼리의 분열에서 오지는 않는 것

 민주주의의 봄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중이 불러와야 할 것.

1980년 서울의 봄을 꽃 피우기 위해 민중은

역사를 짓밟고 있는 군화 발을 걷어내야 했고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학살자들은 민중을 짓밟아야 했을 터

민주화와 군부권력은 공존할 수 없는 것

민중의 열망과 학살자의 야욕은 마주 달려오는 궤도 열차.

그리고 마침내 1980517일의 군사쿠데타

박정희의 전례를 따라, 아니 그 이상으로 전두환·노태우

 그들 학살자들은 계엄령 전국 확대와 함께 일사분란하게

정치활동 금지, 국회 폐쇄, 국보위 설치, 학생·정치인·재야인사 체포

준비했던 일들을 착착 진행했고, 역시 준비했던 대로

광주시민을 학살했던 것.

1980518일에서 27일까지 그 열흘 동안

수백의 목숨을 학살했지만 수십만의 민중은 항쟁했고

싹을 도려내려는 민주주의는 해방광주로 꽃을 피웠다.

꽃은 지면서 꽃씨를 퍼뜨리는 법

 만방으로 퍼져나간 해방광주의 꽃씨를 학살자들이 어찌 막을 수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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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잔재 통일주체국민회의1980829일 장충체육관에서

2,525명 투표에 2,524명 찬성, 무효 1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같은 날 예편한 전두환 장군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축배를 들었어도 다급했을 것이다.

평화통일을 명분으로 유신압제를 자행한 박정희처럼

정의구현, 복지국가를 내세우며 권좌에 오른 전두환이 처음 했던 일은

비리정치인 정리를 내세운 정적 제거와 야당의 강제 해산.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자행된 폭력과 공포통치의 결정체 삼청교육대.

빼앗기고 짓밟힐수록 일어서는 저항.

보도지침으로 귀를 막고 평화의 댐허위 선전으로 눈을 흐려 놓아도

진실을 듣고 눈빛 맑게 빛내는 각성.

해방광주가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는데

  저항의 심장으로 각성한 이성이 어찌 실천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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